환상숲이야기

가족의 숲 : 귤밭 대신 돌밭을 사다.

이지석, 이지영 남매

식목일날 나무 400그루 옮겨심기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희 남매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나무에 미쳐 살았던 서른넷의 아버지는 과수원을 사달라는 엄마 말을 뒤로 하고 빚을 내어 돌땅을 샀습니다. 어떻게든 활용해보려 닭도 키워보고 양봉도 해봤지만, 도무지 예뻐할 수 없는 숲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지러운 숲을 아버지 홀로  환상숲이라 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희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25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해온 든든한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어릴 적에는 나무가 밥 먹여주냐고 따졌었는데, 나무가 아버지의 생명까지도 살려 주더군요.
비로소 숲이 저희 눈에도 환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에게나 환상숲으로 불립니다.

아버지의 숲 : 뇌경색을 이겨내다.

이형철, 문은자 부부

마흔일곱,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갑자기 무너진 생활은 다른 이들의 위로마저 조롱으로 들리게 만듭니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들어온 숲. 가장 낮아지고 약해졌을 때, 비로소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잘려도 또 자라는 억척스러운 나무들을 만났습니다. 살아야 한다. 넘어지고 깨지며 왼손만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3년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완전케 되었습니다. 절망하고 낙심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새로운 시작이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숲을 지킬 수 있도록 가난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딸의 숲 : 숲에서 인연을 만나다.

이지영, 노수방 부부

아버지가 용돈벌이 삼아 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다니던 연구소를 휴직하고 제주에 내려왔습니다.

20대 아가씨가 숲 읽어주는 여자가 되길 자처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 시골에서 시집은 갈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시어머님의 TV 시청과 시아버님의 숲 방문, 며느리 삼고 싶다고 으레 건네는 인사가 저희의 시작입니다. 

서울에서 온 숲 방문객과 제주에 사는 숲해설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만남과 누가 봐도 지속하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서울과 부산, 경주, 제주 - 쉬기에도 짧은 귀중한 주말 시간을 오고 가는 길에서만 8시간씩 쏟으며 노력으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서울 총각과 제주 처녀가 숲에서 만나 숲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숲이 만들어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세상 모든 생명과 공존하는 따뜻하고 겸손한 삶을 살겠습니다.

모두의 숲 : 아이들에게 빌리다.

환상숲은 억척스럽게 자라온 다양한 생명들의 숲입니다. 

그리고 방문해주신 분들이 함께 만든 숲입니다. 작곡가는 음악으로, 촬영감독은 영상으로, 학교 선생님은 수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만화, 소설, 기사 작성, 앱 개발, 홈페이지 제작, SMS 게시, 좋아요 클릭 등. 여러분들께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저희 숲과 곶자왈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버려졌던 돌땅이 환상숲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당신의 이야기 또한 담겨있습니다. 환상숲은 이곳을 방문한 당신의 숲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저희 숲은 저희만의 것이 아닙니다.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광경.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이더군요. 

온전한 형태로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아가길 바랍니다.

- 환상숲 가족들